<음악시평>

음악학사 학점은행제 교육과정을 우려한다.

송진범 Ph.D 전광주여대 교수/한국음악교육협회 부회장

다시 입학시즌이 돌아왔다. 대학들 마다 우수한 학생을 모집하기위한 치열한 경쟁에 돌입했다. 대형 일간지의 주요 광고란에는 자기 학교의 우수성과 훌륭한 교수진 등을 소개하면서 학교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소위 명문대학이라고 하는 대학들이 일간지나 방송광고를 통해 학교를 홍보하고 자랑하는 경우는 본 일이 없다. 그들은 그렇게  광고를 하지 않아도 알아서 지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1997년 7월 26일 ‘대학설립준칙주의’라는 규정이 대통령령 15127로 발표되면서 대학을 설립하고자 하는 사람은 대학 설립의 기준만 충족하면 지역의 교육여건이나 학생 수요 등의 판단 없이 무조건 인가를 내주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1997부터 갑자기 전국에 수많은 대학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게 되었다. 전문대학의 경우 1970년에는 65개 대학 33,483명에서 2000년에는 158개 대학 913,273명으로 27배, 4년제 대학의 경우 1970년에 71개교 146,414명에서 2000년 1,665,398명으로 11배로 정원이 확대되었다. 특히 자연인구의 증가와 산업사회로의 변화를 고려하드라도 대학설립준칙주의는 우리 교육사상 매우 어리석은 정책적 판단이었다. 이 기준이 생겨난 배경에는 물론 학부모들이 자식의 대학진학욕구가 너무나 왕성했고 이를 수용할 대학들이 터무니없이 부족해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그 하나요, 대학설립을 자신의 명예와 부의 고상한 축적으로 생각하는 일부 사립대학 설립자들의 무책임한 발상이 그 두 번째였다. 그러나 이는 불과 10년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교육당국의 무모한 계획이었음이 오늘날 대학의 과잉설립으로 인한 학력과잉현상에서 볼 수 있다. 최근의 모 일간지에서 분석한 결과 기업에서 직원 채용 시 약 80%의 지원자가 학력과 스펙이 필요 이상 높으며 이는 사회적으로도 매우 큰 낭비적 요인이라는 것이다. 학력과 스펙의 과잉은 학생들의 그릇된 학력위주 사고방식에서 비롯되었지만 무엇보다도 기성 교육사회의 이기적인 사욕에서 나타난 측면도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국가적인 낭비요소이며 청년 개개인에게는 시간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커다란 손실이다.
이와 더불어 또 다른 문제는 1997년 도입된 대학의 학점은행제란 제도이다. 이 학점은행제의 취지는 이렇다.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거나 2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3학년으로 편입하기 원하는 직장인, 그리고 나이는 들었지만 무언가 자아실현에 대한 절실한 욕구를 실천하고 싶어 하는 일반인들을 위해서 그들에게 대학교육의 기회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프랑스의 교육학자 ‘랑그랑(Paul Lengrand;1910~)’이 주장한 평생교육(Lifelong Education)의 구체적인 실천과정이었다. 원래 ‘랑그랑’의 평생교육개념은 모든 사람들에게 평생 동안 고급전문화교육기회를 부여함으로서 그들에게 새로운 전문지식의 습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올바른 판단이다. 그러나 이 평생교육개념이 학점은행제라는 대학교육의 또 다른 운영으로 시행될 때부터 이에 대한 사회 교육적 문제성을 포함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대학교육은 ‘랑그랑’이 주장했던 평생학습개념과는 질적으로 다른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평생교육원에 아니면 일반 학원에서 학점을 취득하고 일정한 학점을 채우면 학사학위를 주겠다는 발상은 그 교육과정에 대한 질 관리와 평가방식의 신뢰성으로 인해 매우 위험한 요소를 갖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제도의 시행초기에는 대학교육에 대한 열망이 젊은이들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이에 호응하였고 이에 따라 이 제도가 잘 정착할 수 있겠다는 믿음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음악교육차원에서는 이 제도가 매우 큰 호응을 얻고 있고 현재에도 몇몇 큰 대학의 평생교육원이나 대규모 음악학원에서 이들 방식을 이용하여 사립대학규모에 버금가는 큰 규모로 운영하고 있다. 이 대규모 학원이나 평생교육원에서 운영하는 학점은행제의 매력은 일반대학처럼 커다란 건물이나 시설, 그리고 학교에 대한 이미지 등을 고려할 필요 없이 최소한의 교육시설과 교수진만 확보하면 운영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서 교육당국의 일정한 감시와 감독이 따르긴 한다. 그러나 전국에 흩어져있는 수많은 대소교육기관을 한정된 인력으로 관리 감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문제는 이러한 부실관리에서 오는 교육의 부실화와 신뢰성 파괴이다. 어떤 음악지망생이 있다. 그는 평소 자신이 음악에 매우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였고 그래서 음악대학을 지망하지만 실패한다. 그는 재수를 생각하지만 집안형편이나 자신의 능력을 생각해서 모 학원의 학점은행제 학생으로 등록하기로 한다. 그 학원은 서울 안에 있다. 그것도 교통여건이 제일 좋은 최고의 요지에 있다. 학생들은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을법한 그곳에 일반대학의 등록금과 같은 돈을 주고 등록을 한다. 그러나 몇 달 다니면서 그는 학생들의 교육열과 학교의 시설 그리고 교수의 질적 수준 등에 실망하여 포기한다. 학원은 다시 부족한 학생만큼 충원하고 다시 등록금도 받을 수 있다. 물론 제도란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다. 중요한 것은 교육기관을 운영하는 운영자의 마인드이다. 진정으로 예술교육에 대한 비전과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학교를 운영한다면 이러한 학원도 정규대학과 다름없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흔히 사학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교육을 이용하여 경제적 부에만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다. 교육은 개인의 경제적 부를 이룰 수 있는 도구가 아니다. 국가의 미래를 꿈꾸는 진정한 희생과 봉사의 정신이 기본적으로 내면화 되어 있는 분이라야 한다. 16세기 조선 중기의 유학자로서 학문적 업적을 이룬 율곡(栗谷) 이이(李珥), 역시 동시기에 주자학의 기초를 확립한 퇴계(退溪) 이황(李滉), 그리고 근세의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 선생 등은 교육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고 몸바쳐온 교육자이다. 경쟁과 투쟁이 지배하고 인성과 윤리가 실종되는 현실에서 그들의 교육자적 헌신과 철학을 승계하지 못한다면 교육경영자로서 자격이 없다.
현대사회의 변화에 대처 하기위해 제정된 학점은행제와 이를 통한 음악교육에서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교육의 부실화와 신뢰성여부이다. 엄연히 정규대학의 음악교육과 차별적 요인이 있음에도 등록금이 거의 비슷하게 책정되고 있다는 점 또한 우려스럽다. 더욱이 이러한 교육의 부실화나 낭비적 요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점은행제도가 유명대학 평생교육기관의 전유물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은 음악교육의 총체적인 부실화를 가져올 우려가 있다. 이미 음악대학을 운영하고 있는 유명대학에서 또다시 그에 못지않은 규모의 학점은행제 학생을 모집하고 운영한다는 것은 누가보아도 지나친 욕심이다. 더구나 영세한 음악학원들이 도산하고 있는 실정에서 유명대학들이 ‘싹쓸이’식으로 학생을 모집하는 것은 새 정부가 지향하는 ‘경제의 민주화’ 정책에 비추어 보아도 결코 맞지 않는 교육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는 모 재벌 그룹 총수의 여식이 제과업에 투자하면서 동네 빵집들이 망하게 된다고 사회적 지탄을 받았던 소위 골목상권 싹쓸이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기존의 음악대학은 대학의 국가적 비전과 민족적 여망에 맞는 음악교육을 하고 음악학사 학점은행제는 진정으로 그 취지와 목적에 맞도록 대학의 평생교육원 뿐 아니라 중?소규모 학원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교육할 수 있도록 국가의 정책적 지원과 결단이 필요한 때다.